2008년 1월의 대추리를 가다
새해에
송탄미군기지와 안정리 미군기지를 이어 걷는 평화기행을 해보자고
평화센터 강상원 소장과 의기투합했습니다.
그래서 오늘아침 일찌감치 만나 사전답사를 떠났습니다.
송탄공군기지 정문 앞을 떠나 신장2동 밀월동과 황해도촌, 사거리를 지나
무려 여섯번이나 고향마을에서 쫓겨났다가 마지막 정착지마쳐 빼앗긴 적봉리 마을 산등성이에 섰습니다.
주민들이 쫓겨난 마을 터에는 어느새 미군영내아파트 몇 동이 우뚝 솟아 있었습니다.
허~~~ 참
그런 사정은 옆 동네 장등리나 황구지리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평화의 논이 있었고,
미군기지확장반대의 목소리가 가장 먼저 터져나왔던
그래서 곳곳에 솟대와 깃발이 펄럭이던 금각들 언저리에는
지난 해 농사를 걸러 풀이 무성하게 난 논밭들과
떠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을씨년스런 마을이 있었습니다.
고덕면사무소를 지나 해창리를 지납니다.
국제화지구에 편입된 이 지역은 깃발만 펄럭일 뿐 아직 죽음의 그림자가 짖게 드리워지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나이 드신 어르신들은 지금까지 정부에게 속은 것이 몇 번인지 아느냐며 반신반의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벌써 개발계획서가 나왔고 이들도 자신들이 겪어야 할 상실의 고통을 안은 채
조만간 고향을 등져야 합니다.
길은 궁안교를 지나 진위천 둑방을 지납니다.
몇 십 년 전만 해도 바다와 갯벌이었던 지역이어서인지 바람이 매섭습니다.
둑방길이 끝나는 지점에 팽성대교가 있습니다.
팽성대교를 지나 우리는 어디로 가야할 지 머뭇거렸습니다.
습관처럼 우회전을 하면 동창리, 내리를 지나 대추리가 나옵니다.
하지만 우리는 애써 그 길을 외면했습니다.
아니 외면해야 했습니다.
안정리 부대 신정문을 지나 대추리주민들의 임시거쳐인 포유빌라 앞에서 늦은 점심을 먹었습니다.
밥을 먹고 일어서는데 강소장 핸드폰으로 대추리 000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우리가 온 것을 눈치 챈 것처럼 말입니다.
전화를 했더니 대추리마을에 00 000갈 건데 동행하지 않겠느냐고 제안했습니다.
억지로라도 가고 싶었는데 잘 되었다 싶어 얼른 따라 나섰습니다.
수 없이 오갔던 길인데도
대추리로 가는 길은 생소하기만 했습니다.
검문과 확인을 거쳐 마을 입구에 들어섰습니다.
마을은 태초의 모습으로 돌아가 있었습니다.
마을길은 그대로인데
1952년 초
정든 고향에서 쫓겨나 곤지나루 언덕배기로 이주할 수밖에 없었던
그 때의 모습으로 말이죠.
피흘려 지키려고 했던 황새울은 계속된 복토로 운동장처럼 변했고
꿈과 희망이 어린 대추초등학교와
예술가들의 전시장이며 촛불집회가 있었던 농협창고도 흔적 없이 사라져버렸습니다.
아~
평화예술공원은 어떻게 되었느냐구요?
궁금하지요?
이렇게 변했습니다.
사람도 없고, 예술도 사라진
무너진 잔해
너무 깨끗하게 치워져
이곳에 사람이 살았다는 것을 의심할 만큼
그곳은 이방인의 땅이 되어 있었습니다.
상실된 것들에는
아픔이 있습니다.
우리는 파헤쳐진 폐허의 잔해 위를 헤메다가
최평곤 님의 파랑새가 서 있었던 산등성이에 올라
오랫동안 도두리들판만 내려다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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